10평 사무실이 100평대 스튜디오로...'노력과 보상은 정비례'

드래곤큐 미디어 김시현 대표, 투자의존·일확천금 노리는 창업에 경종

한 손에 꼭 쥔 펜. 공중에서 규칙적인 원호를 그린다. 종이와 거리는 불과 30cm. 하지만 머뭇거릴 뿐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빙빙 돌아가기만 반복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내. 어쩌면 영겁의 시간이 주어져도 해답은 풀리지 않으리. 체념한 듯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자 머리가 맑아진다.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이 열린다. 선택의 시간이 온 것이다. 펜은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춤추기 시작한다. ‘사직서(辭職書)’. 그렇게 5년의 치열했던 기자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냉정’을 내려놓자 ‘열정’이 찾아왔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마블 매니아 캠페인 CF, 스타워즈 데이 프로모션 영상을 비롯해 월트디즈니코리아(disney)의 각종 마케팅 활동에는 항상 그가 있다. 당신의 휴대폰에 있는 카카오 메이커스 속 글과 사진에도 그의 땀과 눈물이 그대로 배어있다. 필립스 코리아 카탈로그 사진, 강남대로를 오가며 볼 수 있는 대형 전광판의 광고 영상. 여러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홈쇼핑 영상.

어쩌면 당신이 모르는 사이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와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영상 사업계 다크호스, 주식회사 드래곤큐의 김시현 대표 이야기다. 국어교육을 전공한 그가 기자란 직업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졸업 후 경험 때문이었다.

“ROTC 공보장교로 군 복무를 했습니다. 공보 업무는 다른 보직보다 신뢰도가 생명이고, 일정은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였죠.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재미가 있어 보였어요. 방송과 기자란 직업이….”

간절함에 대한 응답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역 후 몇 개월 만에 케이블 방송사 기자가 된 것이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방송기자. 2009년 방송사 공채가 사실상 소멸했던 시기에 거둔 성과였다. 그리고 5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기자였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우면산 산사태 피해 등 다양한 비판 기사를 작성하면 지상파 매체들이 그의 취재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소위 언론사 ‘에이스’ 기자로 통할 때였다.

“밖에서 보면 회사를 그만둘 이유가 없었죠. 다른 방송사에 비교해 대우도 좋고, 불만도 걱정도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딱 한 곳. 제 가슴 속에선 다른 말을 하더라고요. 도전해보라고….”

5년간 렌즈를 통해 세상의 민낯을 그대로 전달한 그가 선택한 사업은 상업 영상이었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작은 카메라 하나’ 들고 시작한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반대는 예상된 일이었다. 험난했지만 마음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30년 이상 사용한 ‘재혁’이란 이름을 버린 것도 그때다.

“개명이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제 몫을 해야겠다는 간절함도 가득했고요. 제가 개척한 운명에 대해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고집스러운 신뢰·노력…결과는 배반하지 않았다

첫 시작은 지하 10평 남짓한 사무실이었다. 시현이란 그의 이름을 영어로 바꾼 ‘션 스튜디오’. 시작은 말 그대로 미약했다. 믿었던 동료가 떠나가고 소송전에도 휘말리고, 업무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적자와 피로가 이어지던 악몽 같은 순간이었죠. 그때 간절함, 노력, 신뢰 세 단어 말고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요. 이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 고난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납품일을 어긴 적이 없었고 지역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현장을 뛰어다녔다. 기자 시절 펜과 카메라를 동시에 잡았던 경험과 실력으로 홀로 밤을 새며 끈기 있게 영상 제작을 마무리했다. 고집스러운 신념의 결과는 배반하지 않았다. 그에게 오는 일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긋지긋했던 자금난도 해결되기 시작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영상 마에스트로 김용규 촬영감독. 대학 후배이자 전략 기획을 전담하는 권오석 기획실장의 합류는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균형과 조화가 이뤄지자 불가능해 보였던 성장이 시작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션 스튜디오’는 ‘주식회사 드래곤큐’로 법인화 했고, 지하 10평 남짓했던 사무실은 서울 내곡동 100평대 대형 스튜디오로 탈바꿈했다. 업무 영역도 영상제작에서 사진 촬영, 스튜디오 렌탈, 모델 섭외, 인쇄물 제작 등으로 넓어졌다. 기획, 연출, 촬영, 편집, 후반 작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외주에 맡기지 않고 직접 제작해 업체로부터 큰 신뢰를 쌓았다. 거물 정치인들의 선거 영상과 사진, 홍보물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매출은 매년 배로 성장했다.

지금 드래곤큐는 월트디즈니코리아, 필립스코리아, 미스그랜드코리아, 서울시, 중소벤처기업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등 국내 유수의 업체, 단체, 관공서와 함께 일하고 있다. 그리고 창대함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더 큰 시장으로 도약…하지만 다시 시작이다.

창업회사의 자립 성공 확률은 불과 10%. 대부분이 1년 안에 문을 닫는다. 레드오션인 영상 사업계에서 외부 도움 없이 5년 이상을 버틴 사업체를 꾸려온 것만으로도 가히 성공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아직도 걸음마 단계입니다. 모든 영상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과 실력을 갖추는 게 최우선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 회사의 인재 영입은 언제든 열려있습니다.”

신생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직원이 정규직이다. 급여도 동급 대우를 훨씬 웃돈다. 유류비 지원은 물론, 전 직원 상해보험에도 가입해있다. 연 1회 이상의 해외 워크숍은 덤이다. 이유는 김 대표의 신념에 있었다.

“창작을 위한 고충과 노력은 오롯이 내 일에 집중했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급여나 근로조건이 창작을 해치면 그것부터 걷어내야죠. 그 과정을 겪어봐서 잘 알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목표는 더욱 높은 품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대형 세트 스튜디오 구축 등 지금보다 더 나은 제작 환경을 구축해 국내는 물론 해외 TV 광고, 영화 제작 등에까지 진출할 계획을 하고 있다.

“제 목표는 모두가 행복한 영상과 콘텐츠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작을 의뢰한 사람도, 제작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말이죠. 사실 이쪽 업계가, 몸과 마음이 고된 것에 비해 얻는 대가는 너무나도 적은 게 현실이거든요. 저와 직원들부터 행복한 환경을 만들려면 우선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끈기와 노력은 꿈을 배신하지 않는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사라지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창업에 뛰어드는 세대가 늘어나는 현실. 성실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김시현 대표와 드래곤큐의 성장 드라마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