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한국 여성상에 대한 왜곡된 시각

Q 이선근 : 한국적인 문화콘텐츠를 강조하면서 한국의 신화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번 대담의 주제를 한국의 주체적인 여성서사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김종군 : 현재 우리가 문화콘텐츠를 개발한다고 할 때, 그 원천소스의 발굴은 인문학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원천소스로서 한국의 서사들을 찾아나가면서 기존의 관념화된 방식으로 우리의 인물 형상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의 여성 형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상은 다분히 수동적이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인식됐고, 이러한 인식은 문화콘텐츠의 원천소스에도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고전문학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고, 그런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한국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우리의 고전문학을 통해 바로잡아 보면 좋겠다.

한국 여성의 주체성이 담겨있는 한국의 여성서사

Q 김윤슬 : 역사적으로 한국 여성들이 수동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수동적이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전반적으로 주체적이었다는 것인가요?

A 김종군 : 자칫 한국 여성은 전체가 다 주체적이었다라고 받아들여질까 염려가 된다. 그러나 적어도 고전문학 속에 설정된 여성들 가운데 주체적인 삶을 지향한 인물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조선후기에 들어 생겨난 여성들에 대한 편견들, 예를 들어 여성들은 대외적인 활동의지가 없다거나 혼인에 있어서 자기의 의사를 개입할 의지가 없었다는 등의 내용들 자체가 왜곡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사회구조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대외활동이 거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이끌어낸 진단들은 그때 당시의 의식적인 측면들을 오롯이 잡아낼 수는 없다. 이러한 미묘한 부분은 역사보다는 문학 작품을 통해 더욱 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이야기 문학이 한국인들의 의식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고래로부터 근래까지 이어진 구비문학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한 여성서사 유형이 ‘내 복에 산다’형 이야기다. 셋째 딸이 아버지를 떠나 자기의 배우자를 찾고 남편을 출세시키며,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몰락한 친정까지 거두게 된다는 이 유형의 이야기들, 예를 들어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선화공주와 서동’, ‘감은장’, ‘심청전’ 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서사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보았을 때,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이 갖고 있었던 바람직한 한국 여성의 모습이 수동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주체적인 삶을 꿈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여성 지위가 낮았다는 것은 조선 후기의 특수한 역사적 사례일 뿐

Q 민윤기 : ‘신여성’이 최초의 한국여성의 주체성 인정이라는 시각 등의 정보가 완전히 편견인가요?

A 김종군 : 그렇다. 그것은 조선후기에 유교주의를 생활문화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적인 남성주의에서 비롯됐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경향이 문학 작품에도 그대로 투영돼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고전소설 등의 작품에서는 여성의 모습을 다분히 남성에게 종속적인 존재로 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석하는 시각 자체가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조선후기에 대거 등장하는 남성영웅소설에도 주체적인 여성들이 설정돼 있고, 이들이 남성의 출세를 적극적으로 돕는 서사가 일반적인데 말이다. 흔히 20세기에 들어 신여성이 등장하면서부터 한국 여성들의 주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은 편협됐다고 생각한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사회구조적으로 여성들의 대외활동의 장이 펼쳐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국의 여성들은 그 이전부터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는 점을 먼저 인지해야 할 것이다.

임난(壬亂)전, 남성과 대등한 한국 여성의 사회적 위치.

Q 이선근 : 그렇다면 그러한 의식과 사회적인 실제 대우와의 관계가 많이 있었나요?

A 김종군 :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 사회적인 대우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재산의 분재(分財)다. 조선 전기 ‘면앙정가’를 지은 송순의 분재기를 살펴보면 딸들도 아들과 같이 균등분배가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가정 내의 상황이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결코 홀대 받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이라도 한 것처럼 조선 전기의 여성상을 잘 그린 문학 작품이 15세기 김시습이 지은 ‘금오신화’ 가운데 사대부 여성의 자유연애 의지가 나와 있는 ‘이생규장전’이다. 여주인공 최낭자는 이생에 대해 연정을 품고 이를 과감하게 토로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이뤄간다. 하지만 임난 이후 사회 체제가 흔들리면서 여성들을 성리학적인 규범으로 묶어버린다. 그러한 조선 후기 경향을 조선 후기의 문학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주생전’이나 ‘운영전’ 등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는 유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성들의 자유연애를 비극으로 만든다. 대신에 이러한 자유연애 의지를 기생에게 주는 등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 예로서 ‘옥단춘전’ 등이 있다.

반쪽 짜리가 아닌 한국여성의 주체성

Q 민윤기 : 그렇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여성 주체적인 서사의 내용을 보았을 때, 남성을 내조하는 등의 스토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남성영웅서사의 내용과는 많이 다른데요, 그렇다면 교수님이 말씀하는 주체성이 여성적인 것으로 한정된 주체성만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A 김종군 : 역사적 맥락의 한국 여성의 주체성은 남성을 내조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19세기 여성영웅소설에서 표출되기 시작하는 여성의 대외활동 의지는 처음으로 ‘구운몽’의 자객 심요연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며 남성에 대한 내조가 아닌 보디가드로서 여성 역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후 남자로 변복해서 장수로 전장에 나가고 남성을 휘하에 두는 ‘홍계월전’이나 ‘정수경전’과 같은 여장군계소설도 등장하게 된다. 이는 대외활동에서도 여성이 남성과 대등해질 수 있다는 의식의 표출인데, 19세기에 들어 일군을 이루면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여장군계소설은 남복을 한 여성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남성에게 종속되는 구조로 한계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작품에서 더 진전된 ‘이학사전’이나 ‘방한림전’에서는 여성의 주체성이 남성에 종속되지 않도록 달리 설정하고 있다. 혼인제도가 결국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방한림전’의 주인공 방관주는 동성결혼을 선택하게 한다. 이를 보았을 때 한국인이 갖고 있었던 여성의 주체성은 성 역할을 뛰어넘은 전 영역의 주체성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고전문학의 여성주체가 현대사회에 주는 의미

Q 김보성 : 한국의 고전문학에 나오는 주체적 여성상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A 김종군 : 한국의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여장군들의 설정 의미는 단순히 여성들의 대외활동 의지만을 말하기보다는 여성들이 사회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욕망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작품들 속에서 단순히 여장군들이 남성적인 대외활동상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대외활동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여성적인 섬세한 감정들이 휘하의 남성들을 통솔하는 장점들로 설정돼 있다는 것도 주목해볼 요소들이다. 즉, 한국의 고전문학에 나오는 주체적인 여성서사는 여성의 사회참여 욕구와 남성과는 차별되는 여성만의 강점을 다양한 모습들로 반영한다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급증하면서 여성적 리더십의 장점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미 우리의 전통 속에 존재했던 요소들이었는데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울러 한국의 주체적 여성서사를 언급한 것이 남성과의 대결구도 속에서 주목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난 논제와 더불어서 한국적인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여성상이 왜곡되는 지점을 막아야겠다는 의도에서 주제로 다뤄 봤고, 이러한 문학적인 현상들을 우리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구체적인 작품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