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울릉도 도보 답사, 험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환경 만끽할 수 있어

오전 다섯 시, 울릉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서둘러 잠에서 깼다. 꿈 속에서 울릉도 가는 배 속에서 멀미를 심하게 했다. 일어나자마자 얼른 귀 뒤에 멀미 방지 약을 붙이고 아침식사 후에 먹을 멀미약도 따로 하나 더 챙겼다. 전날에 꼼꼼하게 챙긴 무거운 배낭을 메고 5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울릉도에 가는 배는 세 군데에서 출발한다. 강원도 동해의 묵호여객선터미널, 포항의 여객선터미널, 그리고 울진의 후포항 여객선터미널 중 한 군데에서 배 편을 이용하여 울릉도로 갈 수 있다. 울릉도 가는 배는 생각보다 구하기 힘들다. 여름의 경우 태풍이 오면 배 운행이 중지되기도 하지만, 좌석이 없어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름에는 성수기라 더더욱 매진되기 쉽고, 특히 최근엔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여행일정에 맞춰 울릉도에 들어갈 배와 나올 배를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울릉도에 가기 위해 두 달 전에 예매를 마쳤지만, 그나마도 배 편이 일정에 안 맞아 답사 일정이 6박 7일에서 8박 9일로 늘었다.

함께 가는 친구가 강의실에 놓고 온 지형도를 찾으러 다녀오는 바람에 예정시간인 오전 6시보다 30분 늦게 25인승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출발했다. 과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답사 길인 만큼 다들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해 버스 안이 한껏 부산스러운 분위기로 들떴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하나 둘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내 조용해진 버스 안이 어색해서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출발하는 데 갑자기 쏟아진 폭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에서이기도 했다. 9시 30분배가 혹시라도 기상 악화로 운항 취소되면 오전 7시에 연락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포항까지 가지도 못하고 다시 가던 길을 돌아와야 한다.

다행히 포항의 아침은 맑았다. 우리는 8시에 도착해서 승선할 준비를 했다. 이전에 울릉도에 학술답사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 선배 한 명이 너스레를 떤다. “너네 울릉도 가는 배 안에서 봉투 하나씩 손에 들고 있어야 돼. 배에 타면 여기저기서 토하느라 화장실 갈 틈도 없어.” 울릉도에 처음 가는 후배들은 액상 멀미약을 한껏 들이키고도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선배의 경험에서 비롯된 당부에 나는 배에 올라타고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봉투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다행히 포항의 바다도 맑고 잔잔했다. 흔들림이 거의 없이 울릉도를 향해 가는 배 속에서, 우리는 걱정도 봉투도 모두 내려놓고 부족한 아침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후 1시에 도동항에 도착했다. 울릉도의 낯선 풍경에 다들 자다 일어난 졸린 눈으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울릉도의 풍경은 확실히 ‘육지’의 것과는 달랐다. 완만한 곡선의 산줄기가 대부분인 육지와는 달리 울릉도는 손대면 찔릴 것 같은 가파른 산지들로 구성돼 있었다. 육지의 산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산의 모습은 아니었다. 육지의 산은 사람들의 마을과 산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과 동화된 모습이지만, 울릉도의 산은 있는 힘껏 하늘을 향해 쭉 뻗은 기 센 산들이었다.

울릉도의 관광 시설은 대부분 도동과 저동에 몰려있다. 사동, 태하, 현포 등 울릉도에도 여러 마을들이 있지만 외부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시설은 갖추지는 못했다. 일제시대 도동과 저동에 여객 터미널이 들어선 이래로 대부분의 행정 기관과 상업 시설들이 도동과 저동에 밀집해있다. 그렇다고 해서 도동과 저동에 육지만큼의 많은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도동에도 최근에서야 프랜차이즈 편의점 몇 개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선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즉석 식품은 팔지 않는다. 대부분의 물건들을 육지에서 조달해오기 때문에 물가도 비싼 편이다. 울릉도의 버스 노선은 세 개가 있다. 세 개의 버스 모두 저동과 도동을 중심으로 천부, 내수전, 봉래폭포 등을 운행하는 버스이며 오후 7시 이후엔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 울릉도에서 특이한 것은 택시가 모두 SUV 차량이라는 점이다. 울릉도의 도로가 워낙 굽이치고 경사가 크기 때문에 일반 승용차로는 다니기 힘들기 때문이다.

도동 여객 터미널에 내리면 여기가 울릉도인지 다른 섬인지 구분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없다. 유난히 오징어와 호박엿을 많이 파는 상점이 많다는 것, 그리고 여객 터미널 부근에 붙은 몇 개의 플랑카드에 울릉도 방문을 하려 했던 일본 정치인들을 향한 선정적인 문구가 쓰여 있는 것들이 유일하게 우리가 울릉도에 있음을 알게 해줬다.

우리는 도동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도동에 있는 독도 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동항에서 북서쪽으로 가다보면 독도박물관이 나온다. 그 쪽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 전망대에 오르면 도동 시내와 울릉도의 산줄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독도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높다. 이렇게 가파른 길 인줄 모르고 짐을 모두 지고 오르기 시작했던 우리는 금세 땀 범벅이 됐다. 텐트와 코펠, 음식들까지 모두 낑낑되며 들고 단체로 땀 범벅이 된 우리를 보고 안타까웠는지 주변 상인 분들이 짐 놓을 곳을 마련해주고 얼음물을 나눠주셨다. 땀을 잠시 식히고 또 높은 경사를 올라 독도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독도에 관한 역사적 사료들을 관람하고 독도 전망대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울릉도의 전경을 감상했다.

울릉도의 마을은 산과 산 사이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육지처럼 벼농사는 꿈 꿀 수 없다. 울릉도 사람들은 그 중 완만한 산록대에서 옥수수, 보리 등의 밭작물을 재배한다. 혹은 산에서 나는 약초나 산나물을 캐어 내다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산나물 혹은 약초는 육지에서 생각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 근 20년 간 관광객이 늘어 그로 인한 수입도 늘었다.

육지에선 넓은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고 건물을 짓기 위해 발버둥 친다. 부동산 투기자본이 파고들어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높은 건물을 새로 짓는다. 그래서 육지의 넓은 땅은 육지의 사는 모두에게 넓은 땅일 수 없다. 울릉도에선 이미 높은 산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좁고 척박한 땅을 함께 나누어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육지의 땅들을 파고들던 자본의 힘도 여기까진 미치지 못했다. 자본보다 자연의 영향이 큰 울릉도, 그래선지 이 곳의 민가들은 욕심 없이 작고 아담하다.

울릉도에서는 물을 따로 사 마실 필요가 없다. 화산암질로 구성된 울릉도의 기반암에 걸러져 물은 자연히 정수되어 지표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화산암에서 녹아나온 철분 성분이 물에 많아 센 물이라고 한다. 더운 여름날 대부분의 일정을 발로 걸어 다녔던 우리에겐 걷다 만나는 약수터가 참 고마운 존재였다. 울릉도에는 약수터도 많고, 도로나 산길에 조금씩 새어나오는 물들이 많다. 그만큼 물이 풍부한 곳이 울릉도다.

우리는 저동에서 남양으로 이동한 후 남양초등학교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 다음날 울릉둘레길을 따라 북쪽의 태하로 이동했다. 둘레길이라고 해서 편히 걸을 수 있는 일반적인 산책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울릉도의 산은 워낙 경사가 높고 험한 데다가 관광객들을 위해 둘레길을 잘 닦아놓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좁은 산길에 표지판만 몇 개 세워놓은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짐을 지고 5.5km에 이르는 둘레길을 따라 태하령을 넘었다. 태하령 정상에서 좁은 산길을 따라 강한 바람이 불었다. 태하령의 좁은 고갯길을 따라 사람 뿐만 아니라 바람도 함께 넘기 때문에 ‘병목현상’에 의해 풍속이 세다. 태하령에 이르러 땀을 식히던 우리는 이내 추위를 느끼고 서둘러 태하를 향해 남은 둘레길을 걸었다.

태하에서는 태하등대, 태하항목 관광모노레일 등을 구경할 수 있다. 태하등대를 향해서는 또 어느 정도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혹은 관광모노레일을 타고 쉽게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는 멀지 않은 거리라는 생각에 직접 걸어가보기로 했다. 모노레일은 어른 1인 당 왕복 4천원이 들기 때문이다. 태하등대에 올라 바라본 울릉도의 바다는 맑았다. 육지의 많은 바다들이 여기저기에 난립한 관광시설들 때문에 경관과 자연을 해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경치도 경관도 오염되지 않아 참 맑아 보였다. 자연과, 그 자연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만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울릉도의 바다는 유난히 더 맑았다.

우리는 현포를 지나 추산까지 직접 해안도로를 따라 발로 걸었다. 약 5km 정도의 거리였다. 울릉도의 단축과 장축의 길이가 각각 10km, 12km인 것을 고려해볼 때 울릉도의 절반 정도의 길이를 걸었던 셈이다. 더운 여름인데다가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고 걷는 길이라 다들 숨이 차서 말없이 걸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기암괴석들과 맑은 바다가 눈 앞에 펼쳐졌지만 나는 어깨 위의 짐이 너무 무거워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추산에서 나리분지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작은 20인승 버스였다. 일행이 모두 한 버스에 타지 못해 1시간 간격의 버스를 나누어 타고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일행들이 텐트를 모두 가지고 가서 미리 텐트를 치고 밥을 하며 나머지 일행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시간을 기다려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도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나리분지에 도착한 것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7시였다.

흔히들 울릉도에는 모기가 없다고 잘 못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울릉도 답사 기간 중 어디를 가든 모기가 있었다. 내 경험 상 울릉도에서 가장 모기가 많은 곳은 나리분지다. 나리분지에 도착한 순간 나를 반긴 것은 먼저 간 친구들이 해 놓은 밥 냄새가 아니라 몸에 하얀 색 무늬가 있는 커다란 모기들이었다. 나리분지의 야영장에는 샤워장도 있고 수돗가도 두 군데 있었지만 수돗가 한 군데에선 물이 나오지 않았다. 샤워장에는 모기가 가득했다. 분지인 탓에 밤이 되니 주변 산들로부터 찬 공기가 들어와 분지 밑바닥에 깔리기 시작했다. 텐트에서 자는데 온 몸이 후들후들 떨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담요를 꺼내고 있는 모든 옷을 다 껴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우비까지 꺼내 덮었다. 다음날 아침 잠을 설친 친구들이 텐트 밖으로 나오면서 자다 입 돌아갈 뻔 했다며 투덜댔다.

나리분지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우리는 울릉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성인봉 등반을 시작했다. 성인봉은 해발 986m에 달하는 봉우리지만 이미 해발 2~300m에 해당하는 나리분지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2시간 만에 오를 수 있다. 조금 천천히 숨을 돌리며 오른다면 3시간 정도 잡으면 충분하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향해 가는 첫 걸음은 힘들지 않았다. 나리분지가 그릇 모양의 분지다보니 초반의 어느 정도까지는 경사가 없는 길이 이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경사가 높아지며 절벽과 같은 길이 나온다. 물론 절벽에는 계단이 있다. 계단이 끝나는 곳이 바로 성인봉이다. 끝도 없이 이어질 듯한 계단길의 중간중간에는 쉬어가는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 중간에서 내려다보는 나리분지는 참 넓고 평탄했다. 하지만 이 넓은 곳도 밭농사만 조금 이뤄질 뿐 벼농사는 짓지 못한다. 이전의 일정에서도 워낙 많은 길을 걸어왔던 터라 다들 걷는 데는 단련이 된 모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생각만큼 성인봉 등반이 힘들지 않았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빠르게 성인봉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안타깝게도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던 탓에 성인봉에서는 구름 밖에 볼 수 없었다. 힘겹게 여기까지 왔는데 울릉도의 전경을 한 눈에 담고 보고 싶다는 욕심을 꺾어버린 구름이 미웠다. 하지만 왠지 울릉도에서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높고 험준한 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설지, 험한 산과 풍랑 탓에 순환도로 하나 완공하지 못한 곳, 우리나라에서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이 분포한 곳, 사람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자연의 힘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 울릉도다. 나에게 허락한 성인봉의 아쉬운 풍경처럼 울릉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욕심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울릉도 답사를 마치고 도동에 다시 돌아와 포항으로 돌아갈 여객선을 기다리던 중, 답사 첫 날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일본 정치인을 향한 자극적인 메시지가 담긴 플랑카드가 다시 눈에 띠었다. 그 플랑카드에 쓰여진 메시지처럼, 사람들에게 자연은 오롯이 자연 그대로의 의미를 갖지 않는 듯 했다. 하나의 화산암 덩어리 섬에 불과한 독도가 정치적 의미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듯 말이다.

힘들게 걷고 걸어서 도착한 끝에 맛 볼 수 있었던 맑고 푸른 바다의 풍경들, 시원한 바닷바람들이 오히려 편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의 풍경들보다 더 아름답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직접 걸어다니며 울릉도를 바라보고 느꼈던 우리는, 정치적인 혹은 자본주의적인 시각이 아닌 울릉도 자체를 온전히 마음에 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차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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